2008년 07월 05일
불친절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나는 '쓸데없이' 눈이 높기 때문에 영화건 게임이건 드라마건 애니건 일정한 정도의 검증을 받은 것이 아니면 아예 손을 대지 않는 매우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유명한' 것이라면 언겐가는 꼭 접하게 된다는 말이 되려나.
그런 나에게 있어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어려운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 명성만을 놓고 본다면 언젠가는 꼭 봐야 할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제작 연도가 너무 오래되서 감히 볼 엄두가 나질 않았었기 때문.
보고 나서 그 결론만 말하자면 이 영화는 내가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제일 '불친절'한 영화라는 것이다. 개봉 당시에 평론가들의 악평과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하던데, 솔직히 그래도 싸다 -_- 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친절하다.
영화의 플레이 타임은 항상 한정되어 있고 감독이 보여주려는 이야기는 언제나 많다.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넘기면서 거기에 할당되는 시간의 균형을 잘 잡아 친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제일 보편적이면서도 무난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촉박한 시간의 압박 때문에 이야기를 보여주는게 아니라 배우들의 입을 빌려 '설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관객들은 지루함을 느끼고 영화의 구성에 실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 누구도 감히 써보지 못했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감독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 하는 것이다. 
이런 감독의 불친절 때문에 관객들은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직접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때문에 139분짜리 영화를 보는 행위가 매우 피곤해진다.
상투적인 영화 소개글의 단골 메뉴, 유인원이 뼈를 하늘로 던진 뼈고 바로 우주선이 되는 것은 영화 편집에 있어서 걸작 중의 하나 어쩌구 저쩌구...하는 대목. 이게 나올때까지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황량한 대지에 유인원들이 매우 원시적으로 사는데 하늘에서 검은색 직사각형 판이 떨어진 이후 그들은 동물 뼈를 도구로 쓰면서 다른 무리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고 그 후에는 뼈를 던지는 바로 그 장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로고가 나서, 우주선이 나올 때까지 유인원들만 나오는 장면이 대략 15분정도 된다. 그러니까 15분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황량한 사진을 배경으로 하여 유인원-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우끼우끼 꺆꺆거리는걸 보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초장부터 이렇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버린 이 영화의 불친절함은 시종일관 끝까지 유지된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검은 화면에 웅장한 클래식 음악만 몇분동안 나온다던가, 무중력 공간에서의 움직임을 지루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다던가 등등.
하지만 제일 큰 불친절은 따로 있으니, 관객들이 그 답을 직접 찾도록 불친절하게 만들어놓고도, 마지막에 모법 답안은 고사하고 객관식 보기조차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일 만만한 '네이버 영화'를 보자. 나름 명작이니까 영화 소개는 있어야 되겠고, 소개글을 써야 하는데 내용이 난해하다보니 소개글 조차도 실수를 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_-a 하지만 네이버를 욕하고 싶지 않은것이 그만큼 난해한 결말이기 때문.
네이버 영화 소개글에서 문제가 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지구에 돌아온 보우만은....."


원작 소설 제일 마지막 편을 보면 이게 지구가 아니라는게 바로 나오지만.이 마지막 챕터만 놓고 봐도 검은 돌기둥이 외계인이라느니 인공지능이라느니 주인공이 스타게이트를 탔다느니 순간이동을 했다느니 평행 우주라느니 무한 우주라느니 외계인한테 감금되었다느니 신이 되었다느니 온갖 추측과 설명이 난무한다. 일단 떡밥을 뿌리는 것 자체는 최강급이다.
뭐 그걸 제대로 알아보려면 이 영화의 후속작인 '2010 우주여행'이나 원작 소설 시리즈를 봐야 되겠지만-아닌게 아니라 지금 대충 찾아봤지만 제일 마지막인 '3001 파이널 오디세이'에서 심각한(?) 답이 나온다고 한다. 그 답이 뭔지는 생략-그것과는 별개로 일단 이 영화 자체가 아주 불친절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뿌린 떡밥을 수습을 하지 않고 끝내니까.
그렇다면 지루하다 못해 지칠 정도의 구성에 왕창 벌려만 놓고 도무지 수습이라는걸 하지 않는 이 불칠절한 영화가 개봉한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개봉한지 40년이 지났다는 것에서 찾고 있다. 40년이 지나면서 옛날 냄새가 나긴 하지만(특히 저 위의 빨간 우주복이라던가 -_-...) 전체적으로 화면이나 소품, 배경 등은 지금 다시 써먹어도 별로 부족할 것은 없다. 그때 그렇게 악평을 들었어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을 저력은 충분했던 것이다.
거기에 위에서 이것저것 떡밥을 뿌렸다는 것이 추가다. 후세에 여러 방면에서 sf 쪽 컨텐츠들을 제작한 사람들을 보면 바로 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말 그대로 2001년까지(?) 우려먹기에 충분한 온갖 요소들을 총 망라, 즉 이 업계(?)의 교과서와도 같다는 것이 그 악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제일 큰 특징 아닐까. 불친절? 친절한 교과서가 어디에 있겠는가? 교과서는 딱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설명하기에 무릇 불친절한 법.

나는 그 결론을 이 영화의 제목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년 우주의 서사시라는 것에서 찾고 싶다. 그 서사시 제일 마지막이 'Jupiter and beyond the infinite', 목성과 무한의 공간 저 너머에니까. 사람이 우주를 여행하면서 목성 그리고 무한의 공간 저 너머를 지나 생기는 일들을 묘사한 서사시라고. 따라서 결론이 이상하다 이게 뭐냐 라고 말해도 원래 이야기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걸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쩌라고. 더군다나 후속작을 보면 거기에 대한 답도 나와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교과서라는 것과 한 획을 그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총점을 높게 주고 싶진 않은데. 이 분야의 교과서가 필요한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고, 이 영화가 이룩한 거대한 성과는 꼭 이 영화를 봐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 SF/아서 클라크/스탠리 큐브릭의 매니아가 아니라면 굳이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 by | 2008/07/05 17:36 | 궁시렁거리는 영상 | 트랙백 | 덧글(1)














